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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TURUS ARCHIVE

2026.08JOURNAL 03

좋은 방향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People / Direction

에드거 샤인은 답을 이미 알고 던지는 질문과 정말 몰라서 던지는 질문을 나눴습니다. 회의실에서 방향이 어긋나는 순간은 대개 후자가 사라진 뒤에 옵니다. 질문의 자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 씁니다.

회의실에서 방향이 어긋나는 순간은 대체로 조용합니다.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서가 아니라, 아무도 더 묻지 않아서 어긋납니다.

에드거 샤인은 질문을 두 종류로 나눴습니다. 하나는 답을 이미 손에 쥔 채 던지는 질문입니다. 상대가 스스로 답에 도달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고, 대개 상대도 그 의도를 알아챕니다. 다른 하나는 정말 몰라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2013년 저서에서 샤인은 두 번째를 겸손한 질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답을 쥐고 던지는 질문은 대화가 아니라 확인입니다.

이 구분의 배경에는 샤인의 오랜 조직문화 연구가 있습니다. 그는 조직이 말하기를 묻기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봤습니다. 지시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사람은 유능해 보이고,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 선호가 정보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굳힌다는 점입니다. 샤인은 항공과 의료처럼 실수가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분야에서 이 문제를 관찰했습니다. 지위가 낮은 쪽이 이상 징후를 알아채고도 말하지 못하면, 조직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쓰지 못한 채 결정합니다.

샤인이 겸손한 질문을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설명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질문의 문장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 아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실제로 인정할 때에만 답이 돌아옵니다.

조직이 커지고 속도가 붙으면 두 번째 질문이 먼저 사라집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 편이 안전하고, 그 안전이 쌓이면 회의는 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결론을 확인하는 자리가 됩니다.

실무에서 이 차이는 회의록에 남지 않습니다. 같은 안건, 같은 참석자, 같은 결론이 반복되는데 아무도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결론이 매번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방향에 대한 논의가 늘 같은 곳에서 막히는 조직을 만나면 결론을 먼저 검토하지 않습니다.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를 봅니다. 회의 기록에서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몇 개인지 세어보는 것만으로도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방향은 대개 좋은 질문이 살아 있던 자리에서 나옵니다.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결론을 바꾸기 전에 질문의 자리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References

  • Edgar H. Schein, 『Humble Inquiry: The Gentle Art of Asking Instead of Telling』 (Berrett-Koehler, 2013)
  • Edgar H. Schein,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Jossey-Bass, 1985)